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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례(글, 책 등등 리뷰)/만화ㅣ애니ㅣ영화ㅣ게임 리뷰

위플래쉬 리뷰

by Letssa 렛사 2022. 1. 20.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19632

위플래쉬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에서최고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된 신입생 '앤드류'최고의 지휘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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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엔드롤이 올라올 때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 본 뒤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첫 번째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힘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몰입하면서 본 영화의 스토리가 간단명료했다는 것이었다. 단 몇 문장으로 쓸 수 있을 정도였다.
평소에 소재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열중하며 풀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편인데 그러한 것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몇몇 장면을 곱씹을 시간이 지나니 한숨이 계속 나왔다.

보통 같으면 '광기에 젖은', '기괴한' 이런 식으로 표현할 것 같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예체능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가기 전 입시를 치르며 저런 스승이라는 인간 군상을 한 번쯤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릴 때까지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왔을 수도 있다. 나도 손에 피가 날 때까지 그린 적은 많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한 적도 있다. 암울하고 비참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그 실력을 높이고, 인성 파탄 난 그 스승과 한 순간뿐일지라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면도 있었다.

되돌아보며 영화를 다양한 관점으로 보았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부모와 주인공의 관계였는데 주인공이 드럼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버지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바란 것은 인정이었지만 아버지는 사람 좋은 척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좋게 유지하며 아들에게 잘해주는 척, 또는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실제로 믿으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은근슬쩍 무시하는 것도 덤이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아버지가 주인공이 싫어하는 초코볼을 팝콘에 부으며 자신은 초코볼을 싫어한다고 말하는데 아버지는 처음 안 모양이었다. 주인공은 그것을 보며 피해서 팝콘을 먹으면 된다고 하고, 그에 아버지는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자기가 주고 싶은 걸 마음대로 주며 자식도 그것을 좋아할 거라 당연시하는 부모로 보였다.

사실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갈구했던 것 같다. 이 해의 교사였던가, 그런 것을 받고 친척이 왔을 때 기분 나쁜 소리를 웃어넘겼으니 말이다. 자신에게 자신이 없으니 남에게 지나치게 잘하고, 착한 일을 하며 인정을 받으려는 약한 인간의 표본이다.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고 인정을 추구하던 아버지가 아무 신경쓰지 않고 마음대로 조종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건 다름아닌 자신의 아들이다.

그런 부모인 아버지는 자신이 바라는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주인공을 인정하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소수의 사람이 아닌 다수의 절대적인 인정을 말이다. 그렇기에 플레처 교수의 부당함에도 그렇게나 노력하고, 드럼에 집착했다.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의 얼굴이 굳는 장면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통쾌하게 보일 정도였다.

플레처 교수와의 관계에서는 오로지 인정을 받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플레처는 왜 주인공을 선택했을까 생각하면, 그저 먹잇감을 찾았던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을 말이다. 기괴한 관계이지만 그 관계 속에 있으면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게된다. 그저 중요한 건 실력 뿐이다. 주인공이 더욱 그 관계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관계인 부모와 비슷한 관계였기에 익숙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플래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이룬 것에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추측한다. 본질적으로 음악, 미술 등 대부분의 예체능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현실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쓸데 없는 것들이다. 부수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러한 점에 자신이 얻은 실력이라는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입증받고 싶은 것 같았다. 내 생각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며 그들이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도 오로지 실력을 위해서 아득바득 살아가는 모습에 만족감을 얻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실력이 전부라면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플레처 또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남을 조종하고, 학대를 행한다는 생각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그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떨어져 지내면서도 다시 플레처에게 돌아갔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주인공은 드럼의 실력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거기서 빠져나가서 자신을 찾기에는 많은 것을 은근히 아버지에게 억압당해왔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건 드럼 뿐이다.

주인공이 동일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여자친구 부분인데, 플레처의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자기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한다. 드럼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드럼과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 플래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차근차근 인생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며 서서히 발전해나가는 교육방침을 가진 스승을 만났다면 음악을 즐기며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척이 왔을 때 드럼은 돈이 안되는데 그래도 다행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사실, 예체능이란 그리 돈이 되지 않는다. 물론 잘 찾아보면 먹고 살 구석은 많고 굶어죽지는 않는다. 다만, 돈이 안된다는 말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플래처의 행동을 완전히 반대할 수는 없었다. 플래처가 아니라 느긋한 스승을 만났더라면 그런 실력을 가질 수나 있을까.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실력으로 예술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특히나 나이가 중요한 체육이라던지, 드럼, 춤 같은 것들은 오히려 한 몸 불사지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드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적도 있다. 미술이라는 것은 평생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고쳐 먹었지만 아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날 성공하고 나중에 천천히 공부해도 좋지 않는가.

다른 예체능 분야도 잘 찾아보면 평생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기는 하지만, 플래처의 방식을 아예 피하기 보다 살짝 들여다보고 싶은 갈팡질팡한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씁쓸한 현실이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인생은 길기 때문에 좀 더 멀리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이런 가치관을 후회할지도, 아니면 잘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새기며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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